대선드라마의 반전 정치/시사 창고

 

‘대선드라마‘의 반전


추리작가 아가사 크리스티(1890~1976.영국)의 소설에는 독자들의 예상을 뒤엎는 반전이 있다. 기필코 범인을 알아 맞혀야겠다며 작정한 독자들은 이 반전 때문에 번번이 실패를 경험하고 만다. 그리고 이 극적 반전도 단순히 결말을 바꾸는 형식이 아닌 도입부에서 암시를 걸어두었던 상황을 결론으로 끌고 오는 형태를 취하고 있으므로 독자들은 세심하지 못한 자신의 관찰력을 탓하며 역시라는 탄성을 지르게 된다.

대중에게 인기를 얻으려는 목적으로 써진 문학이라면 필히 반전을 숨겨두어야 한다.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예상을 뒤엎는 반전이 없으면 대중은 밋밋함에 실망한다. 납득 못할 결말이면 배신감까지 들게 된다. 어느덧 영화와 연극 드라마 등의 대중문화에서도 반전은 필요조건 중의 하나가 되어 버렸다.

'할리우드식 문법'에 충실한 작품들을 보면 곳곳에 반전을 배치해두고 있다. ‘식스센스(나이트 샤말란 감독)’ ‘유주얼 서스펙트(브라이언 싱어)’ ‘사이코(알프레드 히치콕)’ 등의 영화에서의 마지막 5분은 쭈빗 서는 충격(shock)이 있다. 그렇다고 반전 때문에 이들의 영화가 부각되는 아니다. 극 전개가 유연하고 흥미로우며 스토리의 짜임새가 탄탄하다. 굳이 그것이 없었다고 해도 아류영화에 머물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전이 대중문화계의 흐름으로 부상하자 극 전개는 무시되고 반전만 탁월하면 된다는 ‘반전을 위한 반전’도 등장하고 있고, 더 발전시켜 ‘반전에 반전’으로 관객을 조롱하는데 재미를 들인 작품들도 나오고 있다. 그런 그들은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반전은 부차적 기능일 뿐이며 그것이 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스토리의 짜임새에 온전히 녹아들어 있지 않을 경우의 심각한 부작용을…….


시대의 흐름처럼 떠오르고 있는 반전을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관객(국민)은 감독의 의도하는 바를 꿰뚫기 위해 주시하고 있다. 관객에게 던지는 부분 암시인지, 결말 유추의 핵심적인 장면인지를 분석하느라 분주하다. 극 전개가 반전에 반전 즉 다중반전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도 신경을 곧추 세우고 있다. 후반부 5분의 충격을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대선드라마가 어떤 반전으로 이어질지 따라가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보수진영의 반전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는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이 전 총재가 최종 결정을 내리기까지 설득에 설득을 하도록 노력을 하겠다"면서 "박 전 대표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더 없는 노력을 앞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또 ‘대선 전에 BBK와 관련성이 드러날 경우 후보 사퇴할 의향이 있나’는 물음에 “법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당연히 책임져야 한다”고 밝혔다.

관객은 이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昌출마 주저앉히기’ ‘朴달래기’ ‘BBK 주가조작 의혹’으로 요약되는 자중지란(自中之亂.같은 편끼리 하는 싸움)과 내우외환(內憂外患)을 동시에 겪고 있는 이 후보의 행보와 터져 나올 결과물에 시선이 집중되어 있다. 이 후보에게 던져진 3개 과제 중 어느 하나라도 정답을 내놓지 못하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지 세력의 이탈’과 ‘대선완주 빨간불’이 그것이다.

셋 중의 하나에 대한 결과 예측은  관객이 앞서나갈 수 없다.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자중지란의 하나는 오래 끌지 않으리라 보인다. 관객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며, 장고 끝에 악수를 걱정한 측이 전면으로 나설 시점이 된 까닭이다. 달은 이미 차서 기울었다. 어느 한 당을 업고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무소속이 이후의 상황 전개에 유리하다는 결론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이 자중지란을 두고 관객은 과거를 떠올린다. 감독이 걸어놓은 암시는 없었는지, 한눈을 파는 등의 부주의로 놓친 것은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의 시발점은 ‘거품론’과 ‘대안론’을 제공한 측의 정치경력이 미천하다는데 있음에 이른다. 박 전 대표와 이 전 총재와 비교해서 그렇다. ‘굴러온 돌’로 비유되곤 하는 이 후보의 한나라당 입지는 굳건하지 않다. 이제 막 흙과 자갈이 모여 그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형상에 불과하다. 작심하고 흔들면 기울어질 수 있는 깊이라는 것이다.

그런 이 후보가 경선이 끝나고 난 후 2달여 동안 보여준 대선 행보는 철저하지도, 계산적이지도 못했다.
CEO 시절과 서울시장선거에서 행한 전략의 답습이 준 한계를 자주 노출시킨 점과 ‘승전물’의 분배에 욕심이 개입되었다는 점, 도덕성과 불법의혹이 고구마 줄기처럼 엮여 나온 것은 반대세력에게 작심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꼴이 되었다. 그 와중에 이재오 최고의원의 ‘좌시하지 않겠다’라는 발언은 촉매제로 작용해버렸다. 미니시리즈로 방송된 윤홍길 소설 '완장'의 ‘임종술’을 퍼뜩 떠올릴 수 있으며, ‘권력과 군림’으로 비쳐질 수 있는 악수(惡手)였다.

박 전 대표와의 관계 복원에 대해서 "더 없는 노력을 앞으로 하겠다”고 이 후보가 밝혔지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이 최고의원이 공개사과를 했음에도 박 전 대표는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사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사과수용 거부의사를 밝힌 발언에서도 앙금이 쉽게 치유될 수 없는 수준임을 인식할 수 있다. 이 최고의원의 ‘백의종군’ 다짐 이상이 나와도 BBK 의혹검증 마무리 이전까지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수진영의 반전은 11월25일 전후에 터져 나올 것으로도 예상된다. 그런데 그것을 관객들이 반전이라고 생각할지가 의문이다. 지금 재현되고 있는 상황의 연장선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의 반전

'昌출마'에 묻혀버린 후보단일화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야 한다. 정동영 후보와 이인제 후보가 그것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문국현 후보의 의사표현만 남아있다. 물론 후보 단일화가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빅카드가 아님을 진보진영에서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성사되어야 하는 것은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세력의 결집도 이끌어낼 수 있음도 묵과할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대화의 장에 들어서야 한다.

후보 단일화로 탄력을 받는다면 보수진영과 각을 세워야한다. 그것의 방법은 '네거티브'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 정책을 부각시켜야 한다. 이 후보가 계속되는 악재에도 지지율 변화의 폭이 크지 않는 것은 '신 자유주의 문제'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의 반대급부로 부상한 '경제대통령'의 이미지 때문이다. 그것에 대응할 수 있는 진보진영의 카드는 '평화대통령'이어서는 세를 꺾을 수 없다.

'경제대통령'으로 맞불을 놓아야 한다. 어느 쪽이 진짜인지를 관객들에게 이해시키는 작업이 뒤따라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보수진영에서 주창하는 것이 "부패했지만 유능한 한나라당, 깨끗하지만 무능한 열린우리당" 이었다. 그것의 대응책으로 "깨끗하면서 유능한 후보" 를 내세울 수 있다. 관객에게 먹힐 수 있는 역전패이다.

보수진영은 잃어버린 10년을 얘기한다. 그것에 반대하고 나서야 한다. 그것을 반박할 자료는 늘려있다. 인터넷 사용자들은 이미 알고 있고 수긍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참여정부와 대립의 각을 세운 전력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없다면 단일화에 성공하는 후보가 시도하면 된다. 고유가와 환율 하락에도 흔들리지 않고 버티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경상수지 흑자 10개월 만에 최고' '15년 만의 최장기 경제팽창곡선 지속전망' '10월 수출 큰 폭 증가'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인 개혁의 10년'등의 외신발표 자료가 있으며(국정브리핑 보도자료),  '한국의 국제경쟁력지수 12단계 상승 11위 달성'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자료도 있다. 또한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한국의 거시경제 전망이 유망하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며 이는 7월 한국의 신용등급을 상향조정했을 때 고려한 요인의 하나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15년 만에 최장기 경제팽창 이어질 것"이라는 블룸버그통신의 보도도 있다.


이런 호재를 묻혀버릴 필요가 있을까. '사회적 양극화 심화'라는 악재를 떠안는 대신 적지 않은 호재를 사용할 권리를 얻는 것이다. '개방과 복지'를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면서 말이다.  17대 대통령선거의 시대정신이며 상승 모멘텀이 '사회적 양극화'와 경제 담론이라면 진보진영도 그에 맞설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와 대립해서는 얻을 것이 없다.

진보진영의 반전은 무궁무진하다. 단지 그것을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네거티브'에만 매달려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치고나오는 인물이 필요하다. 관객들은 그것을 해줄 이를 알고 있으며,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반전에 반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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