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와 척화비 축구창고

2007/08/11 12:51 레드헌트

히딩크와 척화비

흥선대원군은
'서양 오랑캐의 침입을 맞아 싸우지 않는 자는 화친을 주장하는 자요, 화친을 주장하는 자는 나라를 파는 자이다.' 라는 내용의 척화비를 세우고 쇄국정책을 벌였다. 그로 인해 서양의 문물을 받아 들이는 것이 늦어졌고 그만큼 근대화의 시기가 지연되었다.

대한민국 축구에도 척화비를 세우려는 조짐이 보인다. 문을 걸어 잠그고 더이상 선진축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월드컵 이전의 참담했던 과거를 벌써 잊은 듯하다.

최근 아시안게임 감독직 선임과 히딩크와의 기술고문직 계약에 대해 말들이 많다. '6월의 전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하며, '한국 축구가 자생력을 갖지 못한 채 히딩크 감독의 짙은 그늘아래 안주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18개월 동안 배울 것은 다 배웠으니 이제 자립해야 한다고도 한다.

과연 그럴까? 모든 것이 갖춰졌다고 생각하는가? 어둡고 암울한 과거로 회귀하지 않고 월드컵의 영광을 계승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가? 굳이 히딩크가 아니더라도 외국감독에 목매지 않아도 될 만큼 자생력이 생겼는가? 그들을 배제해도 될 만큼 축구저변은 탄탄해졌는가?

전략 전술과 외국팀에 대한 정보를 꿰뚫고 있는 코지진과 출중한 비디오 분석관과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담당관과 대외적인 일처리에 해박한 언론담당관이 우리에게 있는가? 각 분야에서 세계최고라고 할 만큼의 인적자원을 갖추어 놓았는가?


달포 전, 홍명보 선수의 환한 웃음과 함께 시작된 벅찬 감동이 십여분 지속되더니 서서히 그 열기가 걷히면서 왠지모를 허전함이 밀려옴을 경험했었다. 한동안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했는데,이방인과의 뜨거운 포옹장면을 보면서 그것의 실체를 깨달았다. 우리 힘으로 일궈낸 승리였다면 하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기쁨은 두 배 세 배가 되었을 것이며,우리축구는 이제 정상괘도에 들어섰다고 자랑스러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잔치벌여 놓고 세계의 이목을 의식해서 부랴부랴 일류들을 초빙하고 전에없었던 전폭적인 지원을 한 덕에 일궈낸 성과였으며, 홈의 잇점도 상당수 작용한 측면도 있었기에 순수한 대한민국의 승리라고 하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착각한다. 다시 그런 영광이 재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리고 이제는 히딩크를 빨리 잊어야 한다고 말한다. 낚시하는 법을 배웠으면 그것으로 되었지 않느냐고 한다.

18개월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지 않고 새로운 시작을 종용한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그 많은 시간과 노력과 비용은 일회성 행사만을 위한 투자였다고 치부해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데도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가 말했던 '매일 일할 수 있는 곳'을 한국에 만들어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남았다면 K리그는 새로운 도약기를 맞았을지 모른다. 그는 구름관중을 몰고 다녔을 것이다. 그리고 K리그의 경기력 향상은 물론 선수와 감독들의 질적향상도 가져왔을지도 모른다.

또한 유소년축구와 지도자강습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속성과외가 아닌 기초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고, 기술축구와의 접목도 시도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독일월드컵이 열릴 즈음에는 우리 축구의 기틀도 어느정도 자리를 잡게 되었을 것이다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어쨌든 그는 떠났다.


그러나 히딩크 축구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박항서 전 코치가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그도 “‘굿바이’가 아닌 ‘소롱’(solong)을 덧붙이면서 어떤 식으로든 한국축구와 관계를 맺기를 원한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그는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그가 약속한 '세 명의 선수'를 데려가서 홍명보 선수 등의 공백을 메워줄 수비선수로 조련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18개월 동안 그려놓은 밑그림을 완성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새로운 선수의 발굴을 위해 힘써야 하며, 축구발전에 장애가 되는 제도와 관습과 폐해들을 뿌리 뽑아야 한다.

또한 우리 축구 지도자들과 전문가들도 배타적인 생각을 버리고 선진축구 도입에 힘을 모아야 한다. 히딩크의 그늘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내적인 성장을 기해야 한다.

축구협회도 프로리그뿐만 아니라 아마추어축구에도 외국인 지도자들을 들여와서 한국축구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 것을 고집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다. 한국축구는 아직도 선진축구 도입기에 불과함을 깨달아야 한다.

히딩크 감독이 '선수들을 훈련시켜 각자의 팀에 복귀시켰다가 다시 소집하면 그전에 훈련한 것을 다 잊어버리고 오더라'고 말한 고충을 상기해야 한다.

'파워축구'라고 이름 붙여진 우리 축구가 완전히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4년이 걸릴지 아니면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지 모른다. 그러나 독일월드컵 이후에는 각 분야에 걸쳐 어느정도 저변도 확충될 것이고, 세계일류 축구 전문가들도 속속 탄생될 것이다.

기술축구하면 브라질, 토탈사커는 네덜란드, 예술축구는 프랑스라는 등식처럼 우리축구에도 그런 이름을 붙여 줄 것이다. 그 때가 바로 한국축구의 완전한 독립기가 될 것이다.

거듭 말하건데, 우리축구에 척화비를 세우려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순수한 대한민국의 힘으로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날을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월드컵 4강의 감격은 빨리 잊어버리고, 아직도 세계 22위에 머물러 있는 현실을 직시하여야 할 것이다
 no7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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