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올스타여 축구창고

2002/08/20 13:02 레드헌트


진검승부,
목검을 버리고 진검을 잡으면 반드시 승부를 가려야 한다. 어느 한쪽의 죽음이 있어야 끝이 나기에 살벌함이 느껴진다. 섬뜩섬뜩함의 연속이다. 허공을 가르는 칼바람 소리에 사지는 졸아들고, 시퍼런 칼날이 목언저리를 향할 때는 단말마까지 느껴진다. 이런 연유로 구경꾼들은 진검승부를 원한다.

2002년 8월15일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02년 PUMA 올스타전, 더 높아진 프로축구의 위상을 과시라도 하듯 화려한 시작이 있었다.

우리를 짜증나게 만드는 세상사를 잠재우듯, 수재민의 아픔을 달래주듯, 무참히 죽은 영혼들을 위로하듯 둥둥둥 북은 세차게 울었다. 오늘만이라도 모든 시름을 잊어라며 하얀 꽃가루가 뿌려졌다.

그 속에는 내로라하는 프로축구 선수들이 있었다. 자랑스러운 태극전사들의 얼굴도 있었다.

모든 선수들이 시축자가 된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축제의 주인공이었다. 선수들의 밝은 웃음은 관중들을 즐겁게 만들었고, 관중들의 열린 마음은 선수들의 흥을 돋구어 주었다.

그들은 축제를 즐길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었다. 전광판에 잡힌 선수들의 모습에 관중들은 비명을 질렀고, 그들의 멋진 플레이에 아낌없는 박수로 화답했다. 선수들도 관중을 의식한 행동을 연출했다.

티켓전쟁을 불러온 연유가 무엇이었는지 관중석에서 알아냈다. 형형색색의 유니폼을 입은 서퍼터들의 군집이 있었다. 자신들의 세력과시에 경쟁이라도 붙은 듯 보였다.

10개 구단을 상징하는 대형풍선이 터지면서 ‘CU@K리그’ 로고의 애드벌룬이 튀어나오는 깜짝쇼는 이벤트의 진수를 보여주었으며, 선수들의 얼굴에 그려진 페이스페인팅에서는 커져가는 K리그의 위상을 볼 수 있었다.

작년과 달리 올스타들은 작정하고 나온듯 했다.그것이 서로 간의 경쟁심에 의한 것이든, K리그 성원에 대한 보답 차원이든, M.V.P에 대한 욕심이든 열심히 하려는 자세는 보기 좋았다. 올스타전도 경기이니만큼 진지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감독추천으로 뽑힌 용병스타의 화려한 원맨쇼를 보았다. 게임메이커의 역활이 무엇인지를 교본처럼 보여주었다. 득점기계의 가공할만한 골잔치를 보았다. 스트라이커는 골로 말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90분 내내 이어진 일진일퇴의 공방은 축구경기의 묘미를 만끽하기에 충분했다. 재미있는 축구의 진수를 보여주듯 세밀한 패스와 중앙침투와 수비수와의 일대일 경쟁이 이어졌다.

반칙을 자제해 경기의 흐름을 끊어 놓지도 않았다. 들떠 있지만 흥분하지 않는 여유를 보였다. 넘어서는 안될 선을 지키고 있었다. 서로의 몸을 지켜주는 동업자 정신이 살아있었다.

막강한 공격진들을 무력하게 만들어버린 홍명보,김태영,최진철의 스리백은 월드컵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으며, 교체된 수비진은 후반 내리 6골을 실점하면서 그들의 진가를 높여주는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짧은 식사 시간에 만들어낸 아이디어로 대박을 터트린 재치있는 골세리머니는 관중들을 폭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늙은 감독'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찾아 주었다. 팬서비스까지 생각하는 그들의 치밀함을 엿보았다.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뜨는 성급함이 없었다. 식후행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덜란드로 떠나는 송종국선수의 고별인사 같은 뒷풀이가 K리그에도 있어야 함을 보여주었다.

축제의 장으로 승화된 올스타전에서 우리는 K리그의 나아갈 방향을 보았다. 어떻게하면 관중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범답안이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보았다. 축제를 즐기지 못하고 서성대는 주변인들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았다. 수많은 기회를 하늘로 날려버리는 스타급 선수의 무능을 보았다. 최고라는 이름이 부끄러운 어설픈 미소를 보았다. 시종 굳어있는 감독의 불안을 보았다. 전략 전술의 부재와 용병술의 허점을 보았다. 그의 미래도 함께 볼 수 있었다.

일방적인 경기는 흥미를 반감시킨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10개 구단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되어야 하는 이유를 보았다. 후반 막판, 골을 넣도록 배려해주는 수비진의 실수가 아쉽다. 비록 점수차가 많이 난 상황이고, 시간도 얼마남지 않았다고 하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관중들에게 보여주어야 했었다.

서퍼터들의 응원가와 율동을 볼 수 없었던 것이 아쉽다. 하프타임 행사때 각구단의 서퍼터즈의 응원모습을 선수들이 점수를 매기는 콘테스트라도 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흥겨운 잔치였고, 화려한 경기였지만 우리를 흥분하게 만드는 긴장감과 박진감은 덜했다. 올스타전에서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건지도 모른다. 팀을 응원하러 간 것이 아니라 선수를 보러간 것이 때문이다.

손에 땀이 나고, 입에 침이 바짝바짝 마르는 진검승부를 볼려면 정규게임을 찾아야 할 것 같다.  토요일 쯤엔 느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no7025

 

덧글

댓글 입력 영역

최근 포토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