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아작낸 두 명의 지도자 정치/시사 창고

대한민국을 아작낸 두 명의 지도자 

 

조선시대 27명의 임금 가운데 가장 무능한 임금이 두 분 있습니다. 그렇다고 나머지 모든 왕이 유능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무능한 임금 중에 으뜸인 임금이라는 것이지요. 선조와 인조입니다. 이 무능한 두 명의 임금에게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이에 이 왕들의 공통분모를 간추려봄으로써 왕이 되지 않았어야할 인물이 권력을 잡았을 때의 세상은 어떻게 변하는지 또 어떤 재앙이 일어나는지, 현대에는 선조와 인조를 빼닮은 도플갱어는 없을지, 그들의 운명과 삶에 동조된 패턴으로 흘러가는, 평행이론에 부합하는 인물은 없을지 궁금합니다. 


무능한 왕은 열등감에 시달렸다

비정상적인 왕위 계승자가 왕이 되는 이유는 많습니다. 선왕(先王)이 후사 없이 승하한 경우도 그러합니다. 선조(14대)도 그런 경우입니다. 선왕인 명종(13대)은 후사(순회세자)가 있었으나, 13세에 요절하였기 때문에 하성군(선조)이 후사로 낙점됩니다. 명종이 중종(11대)의 둘째 적자이니 선조의 부친인 덕흥군과는 이모형제(異母兄弟)가 됩니다. 선조는 명종의 조카인 것이지요. 결국은 명종의 양자로 입적을 시키는 것으로 해결을 봅니다. 그러니 대대로 적자에게 내려오던 왕통마저 끊어진 게 되고, 선조는 조선의 첫 번째 방계(傍系) 임금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선조에게는 평생 따라 다니는 일종의 콤플렉스였을 겁니다.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자 선조는 생부 덕흥군을 추숭하여 덕흥대원군으로, 생모 하동군부인은 하동부대부인(河東府大夫人)으로 추존합니다. 여기에 덕흥대원군을 왕으로 추존하려 하였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실패합니다. 그럼에도 선조는 생부의 묘를 덕릉이라고 불렀습니다. '능'이 왕이나 왕비의 무덤을 지칭하는 것인데도 말이죠. 그 집착이 얼마나 대단했느냐하면 사람을 시켜 나무꾼 중 '덕묘'나 '덕흥대원군묘'라 하지 않고 '덕릉'에 다녀온다. 라고 하는 나무꾼에게는 후한 돈을 주고 나뭇짐을 샀다고 합니다. 야사에 의한 것입니다. 선조의 손자인 인조(16대)도 이에 못지않았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선조가 생부를 왕으로 추존하려 했다는 사실은 찬반이 갈리지만, 인조의 추존에는 의견이 일치합니다. 


왕위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는데 인조반정이라는 쿠데타로 비정상적으로 왕이 된, 정통성이 약점인, 인조도 생부인 정원군을 대원권으로 추존하였고, 이에 그치지 않고 정원대원권을 왕으로 추존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실패한 선조와는 달리 인조는 결국 추존에 성공하게 됩니다. 정치적 기반이 약한 반정공신들과 이해관계가 맞아 뜨려진 것이지요. 중론을 듣는 것처럼 여론을 각색해 정원대원군을 왕으로 추존하여 원종이라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정원군의 추존에 반대하는 성리학자들의 반발 속에 김장생, 김집 등은 사퇴, 낙향하였으며, 허목은 이를 비판하다가 관직 임용에서 불이익을 받기도 했습니다. 


인조가 추존하려고 애쓴 생부 정원군의 당시 평판을 보면, 선조실록에는 '성품이 포악하고 행동이 방탕하여 당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과 탄핵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이용해 자기 처남을 과거시험에 합격시키거나 군적 회피자를 돈 받고 빼주는 등의 범법행위를 저지른 것은 물론 선조의 형수인 하원군의 부인을 납치하는 패륜도 저질렀습니다. 

선조가 왕으로 추존 하려고 했던 덕흥대원군의 삶도 들여다볼까요. 왜냐하면 이 인물도 정원군의 평판과 다르지 않지만, 무엇보다 조선중기 이후의 왕통에 있어 중요한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아들은 선조, 증손자는 인조였음은 물론, 이후 마지막 군주인 순종까지 모두 이 사람의 후손이 됩니다. 


덕흥군의 성품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던 듯합니다. 명종실록 13권(4월 23일(을해) 2번째 기사)에는 사헌부에서 덕흥군을 파직시킬 것을 건의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덕흥군(德興君) 이초(李岧 는 성품이 교만하고 패려하여 재상을 능욕하고 사류(士類)를 구타하며 창기(娼妓)와의 사랑에 빠져 변복(變服)으로 나돌아 다니고 있으니, 지금 다스리지 않으면 불의(不義)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파직시켜 마음과 행동을 고치게 하소서.” 이에 명종은 "이초가 나이가 어려 진리를 몰라서 망령된 행동을 하는 것인데 파직보다는 가르치고 훈계하는 것이 낫겠다."며 물리칩니다. 배다른 형제의 우애? 


여하튼, 덕흥대원군은 어릴 때부터 주색에 빠져 30세의 나이로 요절하게 됩니다, 현대로 치면 한 손에는 '시바스리갈 18년산'을 옆에 끼고 나머지 손은 여대생의 허리를 끼고 놀다 양기가 빠져 단명한 경우가 되겠습니다. 

여기서, 왜 무능한 왕들은 '아버지의 재평가 작업'에 일생을 바치려고 했을 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아버지는 그저 아버지이고 아버지의 삶은 그대로 변하지 않는 역사인데 말입니다. 


앞에서 보았듯, 선조와 인조가 그렇게 추존하려고 애썼던 생부들의 삶은 존경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시쳇말로 '인생 막살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그들이 걸어온 길에 뿌려져있는 무수한 비리와 치정과 타락의 편린들,,,추존되었다고 해도 온전하게 다 쓸어 담지 못할 만큼 각자의 기억에 깊이 각인된 흑역사였습니다.

 

열등감에 생부의 역사를 되돌리려는 시도를 하는 선조와 인조의 도플갱어는 없었으면 합니다.

무능한 왕은 잔인했다 

선조와 인조를 놓고 무능의 부등호를 매긴다면 인조 쪽으로 더 기웁니다. 임진왜란이라는 최악의 난리가 크게 부각되어 그렇지 2차례의 호란도 큰 국난이었으며, 무엇보다 백성들의 정신이 황폐해졌다는 것 입니다. 조공을 받던 오랑캐에게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 된 것이며, 제 나라의 임금이 오랑캐의 우두머리에게 절을 하고 땅에 머리를 찧는 굴욕(삼배구고두)을 당했다는 것도 그러했습니다. 왕자들도 볼모로 잡혀갔지요. 거기에 그 굴욕이 후세에 길이 남도록 비(산전도비)를 세우는 광경을 본 백성들의 심정이 어떠했으랴 싶습니다.

 

이런 정신적 고통을 백성에게 입힌 임금이었음에도, 실록을 보면 인조가 얼마나 잔인하고 비정한 군주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 많습니다. 반정으로 집권했기에 반정 당시에는 대북파를, 집권 후에는 소북파를 잔인하게 숙청했습니다. 그런 그의 악행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인조는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 돌아온 소현세자를 박해하고 경계했습니다. 소현세자는 청나라에 우호적이었고 청나라도 소현세자를 신뢰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입니다. 청나라가 소현을 왕으로 임명할지도 모른다는, 왕좌(王座)에 대한 불안과 집착 때문이었죠. 급기야 소현세자는 병으로 급사합니다. 실록에는 '10년만에 돌아온 세자가 수개월 만에 병이 들었는데 의관들이 함부로 침을 놓고 약을 쓰다가 죽었음. 향년34세'로 적혀있습니다. 하지만 실록의 기록과는 달리 소현세자가 독살되었다는 설이 정설로 보입니다. 소현세자의 주검은 까맣게 변해있었고, 7군데 혈에서 출혈이 있었다고 실록에 전하는데, 이는 사약을 마시고 사망한 주검에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소현세자가 죽고 나자 인조는 소현의 장자에게 내려졌던 세손을 폐위하고, 봉림대군(소현의 아우, 효종)을 세자로 책봉합니다. 또 소현세자의 며느리(강빈)에게 역모를 꾀했다는 죄목을 붙여 세자빈을 폐한 후 사사하라고 명했습니다. 이때, 신하들이 당태종의 일을 들어 동정론을 펴자 인조는 "당태종은 성인이 아니고 강씨는 내 자식이 아니다."고 비답하자, 다시금 신하들이 "강빈이 비록 전하의 자식은 아니지만 빈으로 있을 때는 소현의 배필이었으니, 이 어찌 전하의 자식이 아닙니까?"라 하며 선처를 바랐습니다. 이에 대해 인조의 답은 인조실록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개새끼 같은 것을 억지로 임금의 자식이라고 칭하니, 이것이 모욕이 아니고 무엇인가?" 결국 세자빈은 사사되었습니다.

 

선조도 잔인한 임금이었습니다. 거기에 정치적 수완을 발휘해 신하들을 편 가르고 이용한 측면도 많은, 정치술수에 능한 왕이었습니다. 가렴주구형 탐관오리였던 정철과 합작으로 정여립의 난에 연루된 여러 인사들을 줄줄이 엮어 천여 명 이상을 죽이고 쫒아내었으면서도 정작 본인은 피해자인 척 행세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억울하게 무고를 뒤집어 쓴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3년간에 걸쳐 진행된 기축옥사도 선조가 주도했을 것이라는 견해도 많습니다.

이렇듯, 선조가 정권장악에 능했음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행한 방식이 결코 떳떳하지 않았다는 것, 이 점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에 대한 대신들의 하극상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그러니, 선조는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지도자가 아닌 정치술수와 공작에 의존하는 지도자라는 비판도 무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비정한 군주는 아니었다는 점, 인조처럼 자손들을 해하지는 않았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녀의 교육에는 무심했던 듯합니다. 아니 방임에 더 가까웠죠. 8명의 부인 사이에서 25명(14왕자)의 자식을 낳았다는 것도 그런 이유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장남인 임해군에서 광해군, 순화군(40명 연쇄살인,궁녀겁간), 다섯째인 정원군까지 인품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왕자는 없었으니까요. 특히 임해군과 순화군은 임진왜란 전쟁 중에도 각지에서 온갖 민폐를 끼치고 다녀 함경도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왜장에게 그들을 끌어다 바쳤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정원군의 행실은 이미 앞에서 언급했으며, 광해군은 죄다 아는 것처럼 (정치적인 감각은 논외로 하더라도)'잔혹함'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까 말입니다. 이건 아마도 유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무능한 왕은 권력집착이 강했고 불통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궁궐을 버리고 백성까지 버리고 도주했습니다. 전쟁에서 왕이 사로 잡히면 국가의 멸망이나 다름없다는 말로 최선은 아니었지만 차선은 된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반론은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임금과 조정은 무엇을 했는지, 주변국들의 변화를 파악하고 있었는지, 했다면 어떠한 대비책을 세우고 있었는지, 외교정책은 있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 백성들의 분노 앞에서는 무기력해집니다. 또 내치를 잘했다면 일본군이 별다른 저항도 받지 않고 수도로 곧바로 진격을 할 수 있었을까요. 선조와 인조가 백성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군주였다면 백성들은 궁궐과 임금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임금이 결사항전을 주창했다면 백성들과 군사들의 사기는 더욱 충천했을 겁니다. 그러니 차선책은 변명에 불과하며, 몽진은 임금, 왕실, 사대부들의 자기 안위를 보존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뿐입니다.


안위 보존,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의주로 도망친 선조는 전황이 계속 밀리자 나라와 백성을 버리고 명으로 도망을 치려했고, 명나라가 극구 가로막자 세자에게 양위하고 자신만 탈출하려 했다는 것 입니다. 이때 명나라는 압록강의 배들을 죄다 치우고, 선조에게는 속국의 왕으로서도 대접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그제야 고집을 꺾었다고 합니다.

 

인조도 남한산성과 강화도로 피난했었죠. 그러나 오래 견디지 못하고 정묘조약과 삼전도굴욕을 겪으며 끝이 납니다. 여담으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도망을 간 진짜 이유는 조선군을 신뢰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그 정도로 조선군의 훈련 등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일례로, 쌍령전투에서 4만 군사, 그것도 대부분이 조총으로 무장한 조선군이 300기의 청나라 기병 선발대에게 패퇴한 치욕적인 전투가 있습니다. 임금이 자신의 군대를 믿을 수 없다? 말이 역사에 그대로 전하여 진다는 사실만 봐도 인조가 얼마나 무능한 임금이었는지 헤아려지고도 남습니다.

 

두 임금의 공통점은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는 것 입니다. 인조는 왕위를 찬탈당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기 위해 친. 인척들을 대거 살상한 반면, 선조는 이순신 같은 전쟁에 공을 세운 장수들까지도 의심하고 경계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순간순간마다 잘못된 판단을 해서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불러왔다는 것 입니다. 선조는 이순신의 대항마로 키운 원균을 더 신뢰해 그를 더 중요한 지점으로 배치한 점, 그가 조선 수군을 전멸 시키고 잠적한 후 원균을 잡아들이라는 요청에도 옹호만 했다는 점, 이순신을 재임용할 때 이 전보다 낮은 품계를 하사해 명령체계가 서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 그 결과로 경상우수사 배설은 탈영하고, 전라우수사 김억추는 항명까지 하는 일을 겪게 됩니다.

 

인조는 더 최악입니다. 인재를 알아보는 눈은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정실인사와 보은인사, 열악한 인력풀, 그의 필첩(筆帖)에는 인조반정의 공신들뿐이었으며, 이 조차도 무능한 자 들 뿐이었습니다. 보은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해 공신인 이괄을 홀대한 결과 '이괄의 난'을 불러와 병력을 소진했고, 후일 청의 침공 때 제대로 된 항전도 할 수 없게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최악 인사의 정점은 인조반정의 공신이며 무능과 매국의 대명사 김자점을 편애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병자호란 때 수만 명의 근왕군을 거느렸지만,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나라 군대의 배후를 치자는 주장에 병력이 적다고 거부해 인조의 삼전도 굴욕을 불러온 장본인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인조의 딸을 며느리로 들이는 등 인조 대에는 더할 나위 없는 권세를 누렸습니다.

 

인조는 능력 부족 이전에 반정 후 국가와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한 준비나 미래비전, 철학 자체도 없었다고 평할 수 있습니다. 조세제도만 해도 그렇습니다. 제대로 된 제도를 만들어 실행에 옮기자니 왕실과 사대부의 희생이 뒤따르고, 양전이 미비하여 토지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도 시행하려는 의지도 없었고, 삼도대동법 시행 과정에서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개편한 영정법은 최악이었습니다. 이는 등급을 나누어 징수하던 전세를 일괄적으로 고정해 걷는 것인데, 연분9등법을 풍흉에 관계없이 1결 4두로 납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제도가 정작 소작농에게는 혜택이 없었고, 오히려 영정법 시행으로 세수가 부족해지자 여러 가지 부가세가 징수되어 소작농들의 허리를 휘게 만들었습니다. 농민들의 원성이 컸음은 물론입니다.

 

 

역사적 큰 사건은 갑자기 일어나지 않습니다. 징조나 징후를 먼저 보여 줍니다. 이 경고를 자각하고 대비하면 화를 면하지만, 외면하거나 방임할 경우 쓰라린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지요. 선조, 인조대에도 필시 전쟁의 징조나 징후는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명의 무능한 임금은 외면했거나 준비를 소홀히 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의식 기저(基底)엔 사대(事大)의 대상인 중국에 대한 튼튼한 믿음이 깔려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중국이 막아주겠지" 이 위험천만한 심리에 젖은 임금과 사대부들에게 자주(自主)는 창고에 처박혀 녹슬고 있는 쟁기보다 더 하찮은 것이었을 겁니다.


백번 양보해, 조선 개국 이래의 외교정책인 사대교린(事大交隣)이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세계질서에서 약소국이 취해야 하는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조공과 이에 대한 답례 형식이었으며, 중국의 선진 문물을 얻기 위한 취택(取擇)이었다 하더라도, 자신이 태어난 국가가 강대국이었으면 하는 열망을 갖고 있을 후손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만족스러운 역사는 아니었다 싶을 겁니다. 또한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한 지금에 와서는 그런 바람이 더욱 커졌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도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에서 일본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으로, 다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으로 사대(事大)의 대상만 바뀌었을 뿐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왜 일까요,,,,,,,이완용이 죽으면서 이런 말을 남겼답니다. "내가 보니까 앞으로 미국이 득세할 것 같으니 너는 친미파가 되거라."

 

선조와 인조 같은 무능한 군주는 지나간 역사책에서만 보았으면 합니다.





2014/10/30 by 우아한 머슴


덧글

  • 두명이라 2014/10/30 19:51 # 삭제 답글

    대한민국?
  • 코로로 2014/10/30 21:07 # 답글

    님은 "무능한 지도자는 잔악해진다"라는 주장을 하시는걸로 사료되는데,

    님이 레퍼런스한 자료에는 무능한 지도자가 잔악해지게 된다는 근거가 하나도 없네요

    대신, 단순 역사적 사실만 열거되 있습니다.

    무능과 잔악한 정치의 관계는 단 한줄도 레퍼런스가 없고, 현상에 대해 억지로 관계성을 부여하셨네요.

    부적합한 레퍼런스는 그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많이 나올만큼 정성은 들어간것 같은데, 헛고생 하신것 같군요.

    이 글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사실의 역사상, 유능했으나 잔악했던 지도자들의 수가 무능하고 잔악했던 지도자의 수를 압도하기도 하죠.

    또한, 레퍼런스로 준비한 두 왕의 사료도 편견이 너무 많이 가미되어 있네요.

    선조와 인조의 잔악함은 왕권이 약화되어 자신들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인 이유이지, 그들의 능력이나 개인의 인간성과는 관계가 없지요.

    글에서 미숙한 티가 많이 나시는데, 좀 더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법을 배우도록 하세요
  • ... 2014/10/30 22:06 # 삭제

    퇴화의 결정체인 치이링이 남의 미숙함을 읊다니 진짜 개그밸리감이네 이거.
  • 코로로 2014/10/30 23:30 #

    퇴화든 진화든,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글입니다.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는데 제 자격, 지위, 신분이 무슨 관계죠?

    인과관계가 없는 사건들을 열거해 인과관계가 있는것처럼 주장하고 있는거 안보이시나요?
  • 코로로 2014/10/30 23:42 #

    1.4.3. 거짓원인의 오류(원인 오판의 오류) ¶

    어떤 사건이나 사물의 원인이 아닌 것을 그것의 원인으로 여기는 경우를 말한다. 보통은 원인으로 간주되는 사건이 문제의 사건보다 앞서 발생하는 경우에 이 오류가 흔히 발생한다. 단순히 우연의 일치로 발생한 시간상의 선후 관계가 두 사건의 인과적 연결을 확립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만일 어떤 미개인이 일식 때 북을 치는 것이 해가 다시 나오는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서 자기가 북을 칠 때마다 어김없기 해가 다시 나왔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의 주장을 일축할 것이다.

    - 엔하위키
  • 코로로 2014/10/30 23:49 #

    그리고 퇴화의 결정체니 지껄이는 비로그인님이 저지른 기초적 논리 실수는 이거입니다.

    1.2.5. 인신공격의 오류 (Argumentum Ad Hominem) ¶

    어떤 사람의 말하는 주장이나 행위를 그 내용과 관련된 정당한 근거에서 비판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성격이나 지적 수준, 사상, 인종적 배경 등의 이유로 그 주장이 틀리거나 나쁘다고 일축할 때 이러한 오류를 범한다. 특히 어떤 사람에 대한 비난의 태도를 촉발할 경우, 감정적인 비난의 폭이 넓어져 마침내 상대방의 주장까지도 동의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기본 귀인오류(Fundamental Attributional Error)라고 부른다.
  • ... 2014/10/31 00:19 # 삭제

    아서라, 인신공격 이전에 그런 평가를 받게 된 치이링의 졸필을 탓해야지 않겠노? 배경지식만 어디서 주섬주섬 그러모아 기워입은 글이 잘된 글이라 믿으니까 이런 자신감이 나오나 보다만.
  • 코로로 2014/10/31 00:25 #

    지식은 지식입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없고, 지성에 대해 어떤 신비감을 품는 태도는 피하시길 바랍니다

    무당도 아니고 그게 뭡니까?
  • 까진 눈의여왕 2014/10/31 00:55 #

    치이링 선생님! 질문있습니다. 중간 광고의 오류가 무엇인가요?
  • 코로로 2014/10/31 01:18 #

    1.2.5. 인신공격의 오류 (Argumentum Ad Hominem) ¶

    어떤 사람의 말하는 주장이나 행위를 그 내용과 관련된 정당한 근거에서 비판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성격이나 지적 수준, 사상, 인종적 배경 등의 이유로 그 주장이 틀리거나 나쁘다고 일축할 때 이러한 오류를 범한다. 특히 어떤 사람에 대한 비난의 태도를 촉발할 경우, 감정적인 비난의 폭이 넓어져 마침내 상대방의 주장까지도 동의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기본 귀인오류(Fundamental Attributional Error)라고 부른다.


    중간 광고의 오류라는건 없는데, 님이 하는건 인신 공격의 오류임.
  • NRPU 2014/10/30 20:50 # 답글

    개그밸로 가시면 인기글 가실듯한데...
  • ㄴㅇㄹ 2014/10/30 21:01 # 삭제 답글

    선조와 인조 두놈다 막상막하 덤앤더머인데 그나마 우위를 가리자면 도망질을 잘한 선조가 좀 더 낫네요.
  • 레이오트 2014/10/30 21:24 # 답글

    선조의 경우에는 좋게 말해서 평시 특화 군주라고 평하기도 하지요.

    그나마 선조는 정치적으로 비상한 잔머리를 지녔기라도 했지 인조는 "감수성"이 없어 삼전도의 굴욕을 제대로 당하고 말지요. 그러고도 정신 못차려서 근대화의 기회를 제대로 아작내기도 했지요.
  • 까진 눈물의여뫙 2014/10/30 21:46 # 답글

    원균평전 쓰겠다는 그 후손들 까는 글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번지수 잘못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 까진 눈의여왕 2014/10/31 00:54 #

    하여간 이런 덜떨어진 정박아 좆병신새끼 하나가 물을 흐려요.
    ㅋ셀프지랄하고 셀프사과꿀잼
  • 까진 눈물의여뫙 2014/10/31 01:06 #

    사과는 했지만 지랄은 안 했다. 아무튼 핵펭귄 머가리는 참 알아줘야제.
  • 까진 눈의여왕 2014/10/31 03:37 #

    좆버러지새끼 정신승리보소
  • 귀여운 순록 2014/10/31 03:38 #

    캬 고소대왕 핵펭귄 욕 찰지게 하는거 보소. 저러다 인실X 한번 당하지. ㅋ
  • 까진 눈의여왕 2014/10/31 12:33 #

    귀여운 순록 중간광고 잘 먹었노 ㄲㄲ
  • 까진 눈의여왕 2014/10/31 00:54 # 답글

    좋은 글입니다 잘 봤네요
  • 아베베게데 2014/10/31 05:25 # 답글

    완전 노무현이네요
  • 물감 2014/10/31 18:26 # 삭제 답글

    이명박그네가 딱 어울리네요. 둘 다 엄청나게 노무현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죠.
    결과적으로 노무현 때 인프라를 재탕하면서, 노무현을 부정하는 것으로 지지세를 얻으려 했으니.
    결과는 뭐냐, 베충이같은 벌레들만 잔뜩 양성했죠 ㅋㅋ
  • 백범 2014/11/01 09:36 #

    번지수를 잘못 잡으셨네. 열등감을 가진 것은 노무현이 아닐런지???

    이명박은 그냥 자기 고집대로 밀어붙이는 인간이라 아군을 만들지 못했던 것 뿐이고...

    박근혜는 그저 자기 아비의 정치적 유산 팔아먹고 집권한 무능력자이고. 피해의식은 있을수 있어도 열등감은 없네요.

    아참, 너는 NL교 신도였지. 미안하다. 종교인에게 교리를 부정하는 소리를 해서...

    그런데 어쩌냐? 나는 인터넷에서건 현실에서건 예수의 에미 마리아는 늙은남자와 결혼했지만 외간남자의 씨를 받은 추악한 불륜간통녀 여편네이고, 예수는 판델라의 자식일 수도 있다는 소리도 하고 있으며(실제 줄리어스 시저 때부터 예수가 태어날 그 무렵까지 수시로 로마 군대가 이스라엘을 약탈했으니까), 더구나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떡을 치면 왜 안되느냐는 소리까지 하는 인간이라서 말이야.
  • 백범 2014/11/01 09:33 # 답글

    선조는 방계에다가 서출 아닙니까? 하성대군도 아니고 무려 하성군이었습니다. 할머니 창빈안씨가 중종의 첩 아니었습니까???

    방계라기 보다는 서얼의 자식이라는 점 때문에 열등감을 가졌다, 그리고 웬만한 왕족이나 사대부들이 이언적 이황 조광조급은 아니더라도, 김종직의 문하생 중 그저그런 학자들 초빙해서 사적으로 학문을 사승하고 김종직의 정신적 후예(?)를 자처했던 것과는 달리, 선조는 그런 교육을 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받긴 받았는데 내가 못본 것인지는 모르지만, 덕흥군이 그정도로 자식들을 최소한이라도 생각했다는 근거자료는 없네요.

    왜 "서출"이라는 타이틀은 빼는 것일까요?

    방계라기 보다는 서자의 자식이라는 점 때문에 컴플렉스를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선조가 덕흥군을 왕으로 추존하려다가 송나라 복안의왕인가 누구의 고사를 들어서 반대를 당했다, 그래서 끝내 좌절당했다는 내용을 어떤 야사에서 본적이 있습니다.

    인종이나 명종의 입장에서나 방계일 뿐이지, 중종한테는 직계가 되네요. 중종의 입장에서는 서자의 자식일망정 선조도 직계입니다.
  • 백범 2014/11/01 09:42 # 답글

    박근혜가 선조, 인조, 고종 그리고 김영삼과 김대중의 정치적 서자인 노무현처럼 정치적으로 무능하다는 데는 사실 일부 우파들도 동의하는 바, 이의가 없음. 또한 아버지 박정희의 유산을 팔아서 집권한 것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으니까...

    다만 박정희가 선조나 인조하고 동급이라는 점은 동의할수 없네요. 선조, 인조 만큼의 열등감, 콤플렉스를 지녔고 자기만의 추종자를 만든 것은 노무현 아닙니까?

    선조는 그때그때 자기 편을 바꾸었고, 인조는 서인계통을, 노무현은 386 NL세력을 등에 업고 상대방에 대한 정치투쟁을 했었습니다. 김영삼, 김대중의 행동이 사실상 우리는 선, 너희는 악 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서인 쪽과 비슷하니 그들의 계승자인 노무현으로서는 당연히 따라갈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르겠군요.

    박정희는 자기만의 신념을 가졌던 일종의 사상가였습니다. 선조나 인조는 열등감과 콤플렉스로 수백명을 죽였다지만 박정희는 옳든, 그르든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그대로 밀어붙였으며 그 과정에서 반대파들 몇몇을 제거했을 뿐입니다.

    열등감과 자기 콤플렉스에 의한 반대파 숙청이라... 열등감과 자기 콤플렉스에 의한 반대파 숙청이라면 박정희보다는 공개 방송에서 안상영, 남상국, 정몽헌, 장래찬을 실명 거론해서 자살하게 만든 노무현이 더 가깝지 않을런지???
  • 백범 2014/11/01 12:54 # 답글

    그러고보니 인조도 방계이자 서자이군요. 선조처럼...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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